전경선 전라남도의회 의회운영위원회 위원장
오늘날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현상으로 모든 사람들이 일상에서 지쳐가고 있다. 삶은 우울하고 답답하다. 경제적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서서히 무너져 힘든 현실을 매일매일 마주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이 그저 그리울 따름이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 삶의 트랜드는 변화될 것이다. 그동안 경제 논리에 외면당한 환경 – 즉 생태적 삶의 방식, 사회적 책임, 시민 연대, 공존 등 공공과 복지, 생명을 우선시 하는 좀 더 높은 가치에 변화의 초점은 맞춰질 것으로 본다.
최근 언론과 농어민단체, 농협과 지자체 등에서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고향사랑기부금법안〉은 서로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간 연대와 협력의 문화를 형성하는 ‘협력적 공동체 문화’를 창출할 매개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우리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고향(故鄕)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①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것, ②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③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으로 정의하고 있다. 출생지(出生地)와 다른 마음 속 고향은 개개인 모두에게 제각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뜻이다.
2007년부터 정치권에서 논의가 시작된 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표류해온 기부금법안이 지난해 농어촌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다시 발의되었으나 지금까지 국회에서 계류 중에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저출산·고령화 및 인구 유출 등으로 복지비 지출 급증·세수 감소에 따른 지방재정을 보완하고 지역특산품 등을 답례품으로 제공함으로써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자 한 법안 도입 취지가 무색할 따름이다.
법안 핵심내용은 기부자 개개인은 현 거주지 관할 지자체를 제외한 모든 지자체에 기부가 가능하고, 지자체에서는 기부금으로 사회적 취약계층 지원과 주민복리 증진 사업에 사용하며, 기부자에게 답례품으로 지역특산품 등을 제공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부금법안이 가져오는 파급효과는 일차적인 경제적 효과로 각 지자체별로 연간 100억원 내외의 지방재정이 확충되는 한편, 이외 별도로 답례품으로 지역특산품 구입하여 기부자에게 제공함으로써 농어촌 지역경제 소득창출에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본다.
경제적 효과 외 부차적인 파급력은 우리 상상을 뛰어 넘을 듯 하다. 기부금을 매개로 매년 지역단위 홍보와 특산품 마케팅 활동, 이를 계기로 방문객 증가 등 도·농 인적교류가 활성화되어 각기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간 연대와 협력의 새로운 공동체 문화가 형성될 것으로 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새로운 치유 문화가 창출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올 기부금법안이 국회 법사위에서 사소한(?) 쟁점에 발이 묶여 있다. 쟁점은 고향의 의미를 묻는 기부금 ‘모금주체’다. 당초 법안은 ‘지방자치단체는 해당 자치단체의 주민이 아닌 사람에 대해서만 고향사랑 기부금을 모금·접수할 수 있다’ 고 규정하였다.
논의과정에서 ‘광역道와 자치區’를 배제하자는 의견이 있어 법사위가 파행을 겪고 있다. 필자는 다음 이유를 들어 일부 의견의 부당함을 제기하고자 한다.
첫 번째, 고향(故鄕)에 대한 의미는 출생지와 마음속 고향으로 나뉜다. 기부자의 고향개념이 출생지 기초지자체일 수 있고 좀 더 넓은 의미의 광역단위 고향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기부자의 고향은 ‘보성’일 수도 있고 ‘전라남도’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광역道는 안되고 광역市는 된다는 논리는 법 형평성과 보편성을 무시한 억지 주장에 불과할 따름이다. (재난재해가 발생할 경우, 광역시장은 모금활동을 하는데 도지사는 먼 산 불구경만 할 것인가 묻지 아니할 수 없다.)
두 번째, 고향사랑기부금을 재원으로 하는 사업들은 주로 재난재해 피해지원 등 주민복리 증진 사업인 만큼 광역 차원에서 시기적절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가뭄과 홍수, 폭설과 폭염, 산불, 태풍피해 등 재난재해가 발생할 경우 그 피해는 어느 한 지역에 한정하지 않고 여러 지자체를 넘어 발생한다는 점이다.
세 번째, 지방재정 재분배 기능이다. 광역단위의 기부금 모금은 조정교부금이나 지방교부세처럼 기초지자체에 재분배함으로써 기초지자체의 기부금 모금액 편차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2008년 고향세를 도입한 일본의 경우, 법 제정 초기에 고향납세 이전 대상 지자체를 기초지자체에 한정할 것인지 광역지자체(도도부현)를 포함할 것인지의 여부를 쟁점으로 다루었으나, 고향에 대한 정의가 어렵고 납세자(기부자)마다 기부하고 싶은 자치단체가 다르기 때문에 고향의 의미를 특정 자치단체에 한정하지 않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갈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경제에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도시와 농촌, 사람과 사람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고향사랑기부금법안〉의 조속한 실현을 기대해 본다.
